왕과 왕비를 모시는 국가 사당 '종묘'
1. 종묘란?
종묘(宗廟)는 조선과 대한제국의 역대 왕과 왕비, 황제와 황후의 신주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국가 사당이다.
조선 건국 후 1395년(태조 4) ‘궁궐을 기준으로 왼쪽에 종묘, 오른쪽에 사직을 세운다’는 예에 따라 현재의 자리에 종묘를 창건하였다. 창건 당시에는 현재의 정전만 있어서 대묘, 태묘, 종묘라고 불렀다. 조선은 제후국으로 5묘제(五廟制)의 예에 따라 개국시조(태조)와 재위 중인 왕의 4대 조상(고조·증조·조·부)을 모시는 제도로 종묘에 신주를 모셨다. 그러다가 세종대에 5묘제에 따라 태조를 제외하고 4대가 지난 왕의 신주를 두고 여러 차례 논의한 끝에 정전 옆에 새로운 별묘(別廟)를 지어 그 이름을 영녕전이라 하였다. 이후 4대가 지난 왕의 신주는 모두 영녕전으로 옮겨 모셨다가, 연산군 대에 ‘세실(世室, 대대로 정전에 신주를 모심)’과 ‘조천(祧遷, 영녕전으로 신주를 옮김)’의 예로 신주를 모시게 되었다. 이러한 예에 따라 3년상(27개월)이 끝난 왕과 왕비의 부묘례(祔廟禮, 신주를 종묘에 모시는 의식)때 정전에 처음 신주가 모셔지고, 이후 ‘세실’ 또는 ‘조천’으로 정하여 정전과 영녕전에 각각 신주를 모시게 되었다. 그러다가 모시는 신주가 늘어나면서 신실이 몇 차례 증축이 되어 현재의 정전 19칸, 영녕전 16칸의 규모가 되었다. 그 밖에 종묘 경내에는 망묘루(望廟樓, 종묘서(宗廟署)의 관원들이 제례에 관한 업무를 보던 곳), 향대청(香大廳, 향과 축문을 보관하는 곳), 재궁(齋宮, 왕과 세자가 제사를 올릴 준비를 하던 곳), 전사청(典祀廳, 제사의 음식을 마련하는 곳) 등의 건물이 있다.
1.1 외대문 (정문)
종묘 정문은 외대문(外大門) 또는 외삼문(外三門)이라고도 한다. 외대문은 정면 3칸의 구조로, 궁궐 정문과는 달리 구조 형태가 아주 소박하고 단순하다. 정문밖에는 하마비(下馬碑)와 서울특별시 유형유산으로 지정된 어정(御井, 우물)이 있다.
1.2 망묘루
망묘루(望廟樓)는 종묘를 관리하는 관원들이 업무를 보던 곳으로, 종묘제례 전 임금이 머물면서 사당을 바라보며 선왕(先王)과 종묘사직을 생각한다는 뜻으로 붙여진 이름이다. 정면 7칸, 옆면 2칸의 구조로 건물 중 두 칸은 누마루로 되어 있다.
1.3 공민왕 신당
공민왕 신당(恭愍王 神堂)은 고려 31대 왕 공민왕과 왕비 노국대장공주(魯國大長公主)의 영정을 모신 사당으로, 정식 명칭은 '고려 공민왕 영정 봉안지당(高麗 恭愍王 影幀 奉安之堂)'이다. 종묘를 창건할 때 지은 것으로 전해지는데, 종묘를 창건할 때 공민왕의 영정이 날아와 종묘 경내로 떨어졌는데, 여러 차례 논의 끝에 영정을 봉안하였다고 한다. 신당 내부에는 공민왕과 노국대장공주가 한자리에 있는 영정(影幀)과 준마도(駿馬圖)가 봉안되어 있다.
1.4 향대청
향대청(香大廳)은 제사 전날 왕이 종묘제례에 사용하기 위해 친히 내린 향·축문·폐백과 같은 제사 예물을 보관하는 곳이다. 향대청 앞에는 행각이 길게 자리 잡고 있어 두 건물 사이에 남북으로 긴 뜰이 만들어졌다. 또 종묘제례 시 제관들이 대기하던 곳이기도 하다.
1.5 재궁
재궁(齋宮)은 왕이 머물면서 왕세자와 함께 제례를 준비하던 곳으로 어재실(御齋室), 세자재실(世子齋室), 어목욕청(御沐浴廳)으로 구성되어 있다. 마당을 중심으로 북쪽에 왕이 머무르는 어재실, 동쪽에 세자가 머무는 세자재실, 서쪽에 어목욕청이 있고, 담으로 둘러져 있다. 왕과 왕세자는 재궁 정문으로 들어와 각 실에 머물면서 목욕재계하고 의관을 정제하여 몸과 마음을 깨끗이 하였다.
1.6 전사청
전사청(典祀廳)은 종묘제례에 올리는 제수(祭需, 제례음식)를 마련하는 곳으로, 평소에는 제례에 사용하는 제기 등의 집기들을 보관하였다. 1395년(태조 4) 종묘를 창건할 때 함께 지었고, 임진왜란 때 소실되어 1608년(광해군 즉위)에 다시 지었다. 네모난 마당 둘레에 ‘ㅁ’ 자 모양으로 건물이 들어섰고 마당에는 음식을 준비하던 돌절구들이 남아 있다.
전사청 앞에는 제상에 올리기 전 제례음식을 미리 검사하는 찬막단(饌幕壇)과 제수할 희생(犧牲, 소·양·돼지)을 검사하는 성생위(省牲位)가 있다. 전사청 동쪽에는 제사에 쓰는 우물인 제정(祭井)이 있는데, 그 주위에는 담을 쌓아 사람들이 함부로 출입하지 못하도록 하였다. 전사청 서쪽에는 종묘를 지키는 수복들이 머물렀던 수복방(守僕房)이 있다.
1.7 정전
정전(正殿)은 왕과 왕비가 세상을 떠난 후 궁궐에서 삼년상(27개월)을 치른 다음에 그 신주를 옮겨와 모시는 건물로 종묘에서 가장 중심이 된다. 정전은 ‘세실’과 ‘조천’의 예에 따라 ‘세실’로 지정된 왕과 왕비, 황제와 황후의 신주를 모셨다. 정전 마당으로 들어가는 문은 세 곳에 있다. 남문은 신문(神門)으로, 혼백(魂魄)이 드나드는 문이다. 동문으로는 제례 때 왕과 제관들이 출입하고 서문으로는 악공과 춤을 추는 일무원 등이 출입한다. 건물 앞에 있는 가로 109m, 세로 69m의 넓은 월대는 정전의 품위와 장중함을 잘 나타낸다. 월대 가운데에는 신문에서 신실로 통하는 긴 신로가 깔려있다. 정전은 1985년 국보로 지정되었다.
1.8 공신당
공신당(功臣堂)은 배향공신의 신주를 모신 곳으로, 정전 월대 아래 남동쪽에 위치한다. 창건 당시에는 5칸의 규모였으나 몇 차례 증축되어 현재는 16칸의 규모가 되었다. 이곳에 있는 공신들은 왕과 황제가 세상을 떠난 후 정해지는데, 이 건물에 모신 배향공신은 총 83명이다.
1.9 칠사당
칠사당(七祀堂)은 토속신앙과 유교사상이 합쳐져 일곱의 신을 모시고 사계절마다 나라의 안녕과 평안을 기원하기 위해 제사를 지내는 곳이다. 일곱 신이란 국행(國行, 길을 관장하는 신), 공려(公厲, 자식이 없는 제후의 신), 국문(國門之神, 문을 관장하는 신), 중류(中霤, 방을 관장하는 신), 사조(司竈, 음식을 관장하는 신), 사호(司戶, 출입을 관장하는 신), 사명(司命, 사람의 생사를 관장하는 신)을 의미한다.
1.10 정전 공청
정전 악공청(正殿 樂工廳)은 종묘제례(정전) 때 악공과 일무원들이 대기하는 건물이다. 정면 6칸, 옆면 2칸의 구조로 소박하고 간결한 모습이다.
1.11 영녕전
영녕전(永寧殿)은 ‘세실’과 ‘조천’의 예에 따라 정전에서 ‘조천(신주를 옮김)’된 왕과 왕비, 황제와 황후의 신주를 모시기 위해 1421년(세종 3)에 새로 지은 별묘(別廟)이다. 그 이름은 ‘왕실의 조상과 자손이 함께 길이 평안하다’라는 뜻을 담고 있다. 영녕전은 신주를 정전에서 옮겨 왔다는 뜻에서 조묘(祧廟)라고도 한다. 전체적으로 시설과 공간 형식은 정전과 유사하지만, 정전보다 규모가 작다.
영녕전의 구조는 가운데 4칸이 태조의 4대 조상인 추존 목조, 익조, 도조, 환조와 그 왕비를 모신 곳으로 좌우 협실보다 지붕이 높다. 좌우의 협실 각 6칸에는 정전에서 옮겨온 왕과 왕비 및 추존된 왕과 왕비, 황제와 황후의 신주를 모셨다. 영녕전은 1985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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