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원인재의 유래

인천 원인재의 유래 

 

이허겸의 사당 '원인재'

 

원인재(源仁齋)는 고려 전기의 인천의 호족이며 현종비 원성왕후, 원혜왕후, 원평왕후의 외조부이자 문종비 인예왕후, 인경현비, 인절현비의 증조할아버지인 이허겸의 사당이다. 19세기 초에 인천 연수동에 건립되었다. 이허겸은 가야의 왕족의 후손으로, 김은부의 장인이며 이자연, 이자상의 할아버지였다.

연수동 신지마을에 소재하였으나 연수동 택지개발이 확정되면서 1994년 시공과 동시에 해체되어 이허겸의 묘역 옆으로 옮겨져 복원 증축되었다.

 

원인재라 한 것은 인천(인주) 이씨 여러 파의 근원이기 때문이며, 32대손과 33대손이 쓴 글인 ‘원인재기’와 ‘원인재상량문’에 언급된 것으로 보아 순조 7년(1807) 또는 고종 4년(1835)에 건축된 것으로 추정된다. 원인재는 원래 연수동 신기마을에 있었으나, 택지조성으로 마을이 없어지는 바람에 1999년 지금의 자리로 복원되었다.

 

이허겸은 인천을 대표하는 성씨 중 하나인 인주 이씨의 시조이다. 인주는 고려시대 인천의 지명이다. 미추홀, 매소홀, 소성, 경원 등을 거쳐 고려 인종 때 인주로 바뀌었다. 인주 이씨는 연이어 왕비를 배출하며 고려 제일의 명문 귀족으로 성장한 가문이다. 그런 탓에 인천은 한때 왕비의 고장으로 이름을 알리며 이른바 '7대 어향'으로 불리기도 하였다. 그러나 왕위를 찬탈하려던 '이자겸의 난'이 실패로 돌아가면서 인주 이씨는 서서히 몰락하기 시작했다. 원인재는 인천의 호족이었던 이들의 파란만장한 이야기가 담겨 있는 장소 이다. 

 

봉림대군 시절 강화에서 직접 병자호란을 겪었던 효종은 강화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적극적으로 진보를 설치했는데, 모두 8개의 진보를 세웠다. 군관 24명, 사병 59명, 진군 18명 등 모두 101명의 병력이 주둔하였다. 포좌 4문, 충좌 26개소의 시설물이 있었다고 전한다. 하지만 지금은 대부분의 석축이 없어지고 홍예문 두 곳만이 남아있었다.

 

 

굴비의 유래를 만든 이자겸

 

이자겸은 고려 인종 4년 (1126년)에 일어난 '이자겸의 난'을 일으킨 장본인이다. 둘째 딸이 예종의 후궁으로 들어가 인종을 낳으면서 이자겸의 앞날은 활짝 피는 듯 했다. 예종이 병으로 죽고 어린 나이에 인종이 즉위하자 다른 두딸을 인종과 결혼시키면서 이자겸은 왕의 외조부이자 장인이 되며 정권을 장악해 갔다. 이자겸의 권련 앞에 왕은 허수아비로 전락할 수 밖에 없었다. 나랏일의 대부분이 이자겸의 집에서 처리됐고 왕에게도 자기 집으로 찾아올 것을 요구하기까지 하였다. 인종은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측근인 김찬을 시켜 이자겸을 제거할 계획을 세운다. 이 사실을 안 이자겸은 척준경과 손을 잡고 오히려 반격을 가해 궁궐을 함락하며 불태웠다. 전세가 위급하게 돌아가자 인종은 왕위를 내주겠다고 제안 하였으나 신하된 자로서 체면상 선뜻 받아들일 수는 없었다. 이자겸은 다음 기회를 기다리며 왕을 자신의 집에 가두고 사실상 조정을 장악하였다. 그러나 이자겸의 권세도 오래가지는 못했다. 척준경이 인종에게 회유당하면서 거사를 일으켜 이자겸을 체포하자 권력을 향한 인주 이씨의 길고 긴 질주도 끝을 맺었다. 

 

인종은 자신의 외조부를 차마 처형할 수 없어 전나남도 영광으로 유배를 보냈다. 이곳에 도착한 이자겸은 굴비와 관련된 일화를 남겨 놓았는데 굴비는 조기를 잡아 소금 간을 한 뒤 말린 것이다. 유배지에 도착한 이자겸이 고을을 둘러보니 바닷가에서 조기를 말리는 풍경이 자주 눈에 들어왔다. 

사람들에게 시켜 하나 얻어서 먹어 보았더니 맛이 일품이었다. 이자겸은 이 생선을 왕에게 진상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러나 용서를 구하기 위해 진상품을 올린다는 말을 듣기는 싫었다. 

그래서 '비겁하게 굴복하지 않는다' 는 의미로 굴할 굴자와 아닐 비자를 써서 생선과 함께 올려 보냈다. 이자겸이 올린 생선 맛을 본 인종은 크게 감탄하며 매년 영광 굴비를 진상해 올리라는 명을 내렸고 이때부터 영광굴비는 왕에게 진상하던 생선이라 하여 유명해졌다고 한다. 

 

 

 

모두 5개의 독립적 건물인 돈인재, 율수재, 승휴당, 원인재, 명인당으로 이루어졌다. 뜰 안으로 들어가면 중시조 이허겸의 묘가 있다. 원인재는 인천광역시 문화재자이다.